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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편] 어느 왕의 이야기
    Talking 2021. 6. 27. 18:44



    Sylphid 4th 에 포함된 어느 노인의 이야기를 단편 형식으로 다시 엮어 보았습니다. 일부 내용에 각색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모태는 '아서 왕 전설' 이고, 이름도 아서 왕 전설의 이름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왕 - 아르튀르 (아서)

    정실 왕후 - 기네베르 (기네비어)

    왕자/반역자 - 메드로 (모드레드)

    왕자의 모친 - 모르강 르 페

    왕자/왕위 계승자 - 고방 (거웨인)

    기네베르와의 불륜 의혹이 있었던 측근 기사 - 랑슬로 뒤 락 (란슬롯)

    노왕을 마지막까지 보필한 기사 - 베드와예/브드와예 (베디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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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인류에게는 하나의 전설이 있었지. 호수에서 검을 얻은 어떤 군왕 그리고 그와 동고동락했던 여러 기사들의 이야기 말일세."

     

    전설에 의하면 섬에는 하나의 왕국이 있었고, 왕국에는 대대로 섬을 지켜온 기사의 일가에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의 주인공은 그 중에서 마지막 대의 왕으로서, 젊은 시절에 어떤 호수를 거닐다가 호수에서 전설의 검을 얻었다고 한다. 검을 얻고난 이후, 검이 가진 신비로운 가호에 의해 왕은 왕국을 강하고 지혜롭게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왕의 능력에 감화되어 각지에서 기사들이 왕을 동경하며, 궁전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모인 기사들의 수는 대략 20 여명 정도.

     

    당시 왕국은 초기 왕조 시대로서, 왕 역시 한 명의 기사로서 적들과 맞서 나아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궁중 질서 체계가 명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왕과 기사들 사이가 이후 시기보다도 훨씬 가까웠던 시절로서, 왕과 함께 하나의 식탁에서 토의와 식사를 하고, 왕과 함께 동락을 할 정도로 왕과 기사들 간의 강한 유대가 강했고, 이는 왕과 기사들이 이끄는 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언제 침략이 이어질지 모르는 열악한 시절이기는 하였으나,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왕을 따르며 왕국을 지켜내려 하였다. 수많은 외침을 막아내고 백성들을 지켜낸 활약에 의해 왕과 기사단은 뭇 사람들의 존경을 이어 받았으며, 왕 역시 이러한 찬사에 보답하고자,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켜가는 겸손한 왕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였으니, 나라는 점차 부강해지고, 그간의 전란으로 인해 피폐했던 백성들의 삶 역시 보다 나아지게 되었다. 왕국 곳곳에서 왕과 기사들을 찬양하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신으로부터 하나의 과업을 행할 것을 명 받았다고 한다. 그 명은 바로 '신의 가호를 받은 보배' 로 알려진 '성스러운 잔(Calix)' 를 찾아 나서는 것. 잔을 찾아내는 것으로써 신이 신성한 권능으로써 왕국을 지켜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왕과 기사들 그리고 그들의 수하 전사들 모두가 성스러운 잔을 찾아나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과정 속에서 야만족의 핍박이나 영주의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원하고, 군대를 일으켜 이웃 나라, 그리고 섬 건너편의 나라들을 향해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역시 처음에는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왕국은 이전까지는 언제나 적의 침입에 맞서야만 했던 입장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고난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왕이 원정과 정복 사업을 통해 자신들을 괴롭히던 무리를 몰아내는 것으로써 그 한을 풀어준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왕의 이러한 대외 정복 사업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했고, 그의 성스러운 잔을 찾기 위한 여정에 수많은 귀족 가문과 백성들이 열렬한 지원과 지지를 이어갔었다.

     

    그러나, 왕과 기사들, 그리고 왕국 전체가 신의 가호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만을 갖고 성스러운 잔을 찾아나서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왕국은 왕국 내부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한 문제점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거듭되는 무리한 원정으로 인한 과도한 지출은 왕국의 재정을 궁핍하게 만들었으며, 과도한 세금 지출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왕이 일으킨 기사 왕국의 번영은 영원한 것처럼 보였고, 왕궁은 점차 화려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 내부는 누적된 문제점들로 인해 곯아가고 있었으며, 사소한 사건 하나가 대형 사건을 폭발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

     

    계속되는 원정으로 궁정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된 왕을 대신하여 국정은 왕자들 중 한 명으로 그의 친아들인 '왕자' 가 맡고 있었다. 그는 왕자이면서 기사단에 가담하였고, 어린 나이부터 원정을 나가느라 궁정에 자주 나가 있던 그를 오래토록 대신해 오고 있었으며, 왕의 무리한 원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국정 문제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자신이 왕이 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늘 다짐하고 있었다.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애민 정신을 배워 그 정신을 이행하려 한 사람이었으며, 기사로서, 왕으로서 정당한 자격을 갖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갔었다.

     

    그러나, 왕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성배 탐색 및 원정을 위해 나가 있는 동안 궁정을 지키고 있던 친아들이 아닌 자신과 여정을 함께 해 오고 있던 기사이자 자신의 조카에게 왕좌를 물려줄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생각은 '왕자' 로 하여금 배신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더 나아가 배신감은 아버지에 대한 앙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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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해서, 오래토록 왕자가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 앙심을 누군가가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네요."

     

    "그렇지, 그의 가슴 속은 늘 불타고 있었을 게야,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오래토록 비워두고 있었던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마땅히 자신에게 돌아가야 했었을 왕좌를 대신 차지하게 된 자신의 형제에 대해. 사악한 자는 그런 왕자의 마음 속 불꽃에 이끌려 그에게 다가왔던 게지."

     

    "그런데, 왕국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왕자가 아닌 그의 형제를 왕은 대체 왜 후계자로 삼으려 한 거예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바로 왕은 그의 친아들인 왕자가 아닌 조카를 후계자로 내세우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친아들이 왕에게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었음이 그 이유. 이에 루시언 노인은 왕자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하겠다고 말하고서, 그 이야기가 해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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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은 왕좌를 차지하자마자 왕국의 지체 있는 일가 출신 여성과 정식 결혼을 하였다. 여성은 왕국의 귀족들과 백성들 사이에서도 미인으로 정평이 있는 여성이었고, 왕국의 왕이면서도 왕국에서 명망 있는 기사이기도 했던 왕에게 있어서 가장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 결혼은 어디까지나 정략 결혼이었고, 왕은 왕후가 된 자신의 여인에게 깊은 애정을 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왕은 자식을 얻을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조카인 이를 후계자로 선정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는 도중, 그는 서부 지역을 순시하는 도중에 '호수의 일족' 에 속한 어느 여성과 만나서 그의 거처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후, 여성은 왕의 아이를 출산하였고, 이후, 여성은 그 어린 아들과 함께 왕궁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한 때 만났던 여인을 알아본 왕은 그가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난 이후, 여인과 그 아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하였으며, 자신에 의해 태어난 소년을 자신의 친아들로 여기었으니, 그가 바로 '왕자' 이다. 왕은 여인 역시 자신의 '제 2 왕후' 로 삼으려 하였으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여인은 왕의 그 제안을 거절하고서 왕궁을 떠났고,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왕은 왕자를 왕후의 아들로 입적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로 왕이 어쨌든, 자신의 친아들인 왕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실 왕후 출신이라는 뻔한 거짓말이 그의 측근이었던 기사들과 귀족들에게 통할 리 없었고, 평민 출신일지도 모르는 왕자를 왕궁의 귀족들은 어쨌든, 여타 귀공자들, 왕족과는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를 왕위 계승자로 삼는 것은 여러 의미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던 왕은 그를 차마 왕위 계승자로서 내세울 수 없었으며, 그리하여 왕자가 궁에 들어온 이후에도 왕은 자신의 조카인 왕자를 계승자로 내세우는 방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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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은 자신의 친아들이 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이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컸고,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 그래서 그에게 왕위 계승권을 함부로 줄 수 없었던 게야. 그 대신, 왕은 자신이 원정을 나가 있는 동안에는 왕 노릇이라도 해 보라고, 그 왕자에게 자신이 왕궁 밖에 있는 동안 국정을 다스리도록 하였을 터. 하지만 그것이 결국 왕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왕권의 계승자로 여기었기에 나라를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자신이 계승자로 있을 수 없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되었겠지."

     

    "그렇다면, 왕자가 왕의 대행이 아니었다면, 왕국의 역사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었으려나요."

     

    이후, 내가 루시언 노인에게 묻자,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답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애초에 후계자로 내세운 자신의 조카가 아닌 친아들을 왕궁에 남겨 자신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한 것부터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그런데 그 말하는 어조가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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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원정을 위해 섬을 떠나, 대륙에 나가 있는 동안 괴소문이 퍼져 나아가기 시작했다, 서부 지역 순시 중에 만났다는 '호수의 일족' 여성은 사실, 왕의 여동생이며, 그 아들은 왕의 여동생이 낳은 사생아라는 소문이었다. 당연히 거짓된 소문이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왕자가 사생아라는 사실은 은연중에 왕궁 내부에 퍼져 있는 소문이었고, 사생아설을 부정한 왕은 왕자의 탄생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아서 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이 고약한 소문이 퍼져 나아가기 시작할 무렵, 왕의 권한 대행이었던 왕자는 해당 소문에 대한 근원을 파악하려 하였지만, 애꿎은 사람들만 처형될 뿐, 근원 파악에는 결국 실패했다. 본래 왕에게는 그를 곁에서 보좌해 주던 현명한 학자도 있었고, 그가 왕궁에 있었다면 해당 소문의 근거를 찾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학자는 왕의 원정이 시작될 무렵, 이미 그의 곁을 떠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어떤 술사가 그에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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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실 왕후라는 여인은 측근 기사 중 한 명과 불륜 관계에 있으며, 왕자가 이 사실을 발각해낼 것을 우려해 그를 왕궁에서 끌어내기 위해 이러한 소문을 퍼뜨렸다, 라고 왕자에게 말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서 불륜의 대상은 왕의 측근 기사들 중 하나로서, 측근 기사들은 동료의 잘못을 모른 척해 줄 것이고, 왕자가 왕궁에서 사라지더라도 후계자는 정해져 있으며, 그 역시 왕족이기에 왕위 계승에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알량한 믿음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고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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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술사의 이야기를 듣고 왕자는 크게 분노했으며, 왕자는 그 모든 것들이 내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정복 사업과 국정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것에만 연연하고 있는 국왕의 잘못된 태도에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 왕자는 '마땅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잘못된 국정으로 피폐해진 왕국을 바로잡는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왕궁을 점거하고, 왕좌의 방으로 나아갔으며, 왕관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던 사제를 비롯한 왕궁 내에 있던 사람들의 목을 베어 죽이고 자신이 스스로 왕관을 쓰며, 왕국의 새로운 왕임을 선포했다.

     

    "대체 이 무슨 거동이란 말이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시오, 왕자님!?"

     

    "당연하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다."

     

    본래 새 왕은 왕자 시절에는 현명하고 강인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왕인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애민과 호국의 정신으로 무장한 굳센 왕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왕위 계승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 관한 악소문들이 퍼져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그로 인해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그러한 어린 시절의 다짐을 내팽개치고 말았으니, 새 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추진한 일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의사에 반발한 궁정 내부의 사람들과 자신을 경멸하던 귀족 자제들을 대거 숙청한 것이었으며, 그 이후로도 백성들 중에서도 자신에 관한 소문을 퍼뜨렸다는 사람들을 마구 색출해서 잔혹하게 처형하고 나라의 곳곳에 감시자들을 보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대해 험담하는 모든 자들은 가차 없이 죽이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특정한 개인 및 단체에 한정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일가, 심지어는 마을 전체가 대상이 되기도 했다. 새 왕은 본보기로 자신의 어떤 정책에 반발한 어느 마을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아 마을의 모든 것을 파괴, 약탈하고, 마을에서 살아있는 것들은 사람, 동물을 가리지 않고 몰살시킨 후에 해당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해 기록말살형에 처했으며, 그 이후로 이러한 사례를 들어 새 왕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무엇이든 징벌과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한다면, 자신 뿐만이 아닌 자신의 일족과 터전 모두가 세상에서 '삭제' 될 수 있음을 명백히 하는 등, 왕국의 모든 것들을 탄압과 학살로 다스리는 공포 정치에 빠져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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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불타는 거리 곳곳에 무참히 잘려 나간 사람들과 동물들의 머리가 마구 뒤섞인 채 쌓여 있었고, 길마다 목 없는 시체들이 즐비했으며, 건물마다 핏자국들이 없는 곳이 없었으니, 마치 식인귀들이 마을을 휩쓴 것 같았다고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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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이야기는 원정 중이던 왕에게도 닿았고, 결국 왕은 새 왕의 폭거를 막고자, 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수도에 도달하자마자 왕은 새 왕, 아니 반역자의 진영을 향해 그의 모습에 대해 한 없는 안타까움을 표했으나, 반역자는 그러한 왕의 발언에 바로 반박을 하였다.

     

    "아들아,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들었노라.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어렸을 적에는 애민과 호국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던 이를 누가 그 지경으로 몰아 넣었느냐는 말이다!"

     

    "당신이란 작자가 그 동안 나라의 관심사를 바깥에만 몰아넣을 여력의 반이라도 내정과 백성 수호에 힘을 썼다면 나라 꼬라지가 이 꼬라지가 될 이유는 없었겠지! 애당초 네놈은 당신의 말에 뒈지라면 쳐 뒈질 나부랭이 새X 를 자신의 후계자랍시고 쳐 내세운 것부터 이미 글러 쳐먹은 놈이야!"

     

    그 '나부랭이' 는 다름 아닌 자신의 조카이자 왕위 계승자로 지정된 그 왕자였을 것이다. 공포 정치에 빠져 들다 못해, 왕궁의 모든 이들을 욕하고 저주하는 반역자의 태도를 보며, 왕은 자신의 아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여기고, 그를 반역자로서 토벌하기로 결심하였다. 반역자는 왕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그 머리통이 쳐 부서져도 잘난 너희 대가리를 모실지 보자' 라는 도발을 하면서 적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도끼로 목을 치는 것은 기본이요, 사지를 찢어 발기는 형태로 반역자는 왕의 부하를 죽였으며, 왕위 계승자였던 왕자 역시 전란 중에 반역자의 군세에 잡혀 산 채로 정수리가 도끼에 찍혀 죽었으며, 이후 반역자는 자신이 직접 그 '나부랭이' 시신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잔인하게 찢어발겨 그 형체를 왕에게 보여주는 것으로써 그를 잔혹하게 도발하였다.

     

    반역자는 잔혹한 기세로 왕을 밀어붙이려 하였지만, 그 역량은 왕과 여러 측근 기사들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역자는 왕의 군세에 밀리다 못해, 왕궁을 빼앗겼으며, 이후, 몇 남지 않은 잔당과 함께 왕궁 인근의 어느 산지에 요새를 차리고, 왕의 군세에 대항하다가 요새가 함락될 즈음, 포로가 되어 왕의 본영으로 끌려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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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토록 귀족들에게 멸시를 받고 있던 반역자는 권세와 명예 뿐만이 아닌 힘 역시 갈구하고 있었으며, 왕궁 내에 힘의 상징으로 여기어지는 무구가 있음을 알고, 그 무구를 찾아내려 하였다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왕궁의 무기고에서 해당 무기를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았고, 그러면서 그 검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떤 위협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하리라 믿고 있었지. 하지만, 막상 아버지와의 전면 대결에서 그가 손에 든 보검은 그러한 힘을 내지 않았어."

     

    "....... 실제로는 그저 평범한 기사의 도검에 불과했을 뿐, 그것이 이유겠지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루시언 노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애초에 왕의 보검 역시 전승에 의하면 호수의 일족이 지키고 있던 신비로운 검이라 하였지만, 그 실상은 그저 평범한 기사의 검으로, 수많은 업적과 위업을 남기며 왕의 명성이 드높아지자, 더불어 같이 명망을 얻으면서 그와 더불어 신비로운 전승도 얻게 되었을 따름이라 말했다, 그에 이어 반역자가 얻어낸 무구 역시 왕의 업적과 무공의 명성에 힘입어 같이 명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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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은 전투 도중에 치명상을 입은 여파로 거동이 불편할 지경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의 배신자이자 공포 정치의 화신이 된 아들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기로 하였다. 결국 왕은 오래토록 자신의 보검으로 소지했던 도검을 대신해 자신이 원정 도중에 사용한 창으로 처형대의 기둥에 묶인 아들의 흉부를 직접 찔러 처형시켰다. 그러면서 왕은 아들이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아들은 왕이 이전부터 소지하였던 도검이 아닌 창으로 자신을 찌르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저주의 말을 남기며 죽어갔다.

     

    "그래....... 그 '호수의 일족' 이 줬다는 잘나신 몸에 더러운 피를 묻히기는 싫었나 보지? 우히히히히...... 그런 주제에 아들을 위한다고? ....... 신들께서는 너희를 지켜보시고 계신다, 허황된 생각에 빠져 나라 일을 그르치는 놈들, 불륜을 낭만으로 착각하는 짐승 같은 놈들, 명예와 용기라는 겉포장만 요란한 구차한 놈들흐아아!!! 카마엘(Camael) 과 일만 이천 천사들의 잔혹한 심판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이히히히히..... 해해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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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역자' 의 어투를 재현하는 목소리에서 막대한 광기와 분노가 느껴지고 있었으며, 그가 했다는 말에서 마치 군주는 물론이고, 인간되기 마저 포기한 듯한 면모가 나타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그렇게 마구 비속어를 남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왕이 되고 사람들을 마구 처형하기 시작하면서 그간의 격식을 모두 내던져 버렸으며, 어투 역시 상스럽게 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어투를 재현하면서 루시언 노인은 왕의 아들은 처음부터 그런 이는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와 그것에 의한 광기가 그의 모든 것, 심지어 인간성마저도 집어삼킨 결과임을 말하고 있었다, 불륜에 빠진 기사 역시 인간성을 그렇게 상실했지만, 만인을 잔혹하게 처형하려 한 왕의 아들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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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은 진압되었다. 그러나, 반란이 끝나고, 왕국에는 이전의 영화를 되찾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 때, 대륙 원정까지 이룰 수 있었던 그의 기사들과 기사단 그리고 군단에서 이제 남은 것은 적은 일부에 불과했고, 왕국의 신하, 귀족들 역시 난리 도중에 대다수가 사망했다. 평화로웠던 왕국은 황폐해졌으며, 갑작스레 찾아온 폭정과 전란에 지친 백성들 역시 각지로 흩어져 떠나, 진정 왕국에 소속된 백성들의 수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적어졌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왕도로 귀환한 왕을 환영하고, 왕이 왕궁으로 복귀하기를 소망했고, 그리하여 왕은 왕궁으로 돌아갔지만, 왕은 왕좌에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었으며, 왕은 궁전의 한 구석에 그저 홀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의 왕은 이전과 같은 용기와 결단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왕은 반역자로 규정한 자신의 친아들을 자신이 규정한 바에 따라 보검이 아닌 것으로 처형하려 하였지만, 이후,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친아들이었을 그를 자신의 보검이 아닌 뭇 전사들이 이용했을 것과 같은 장창으로 처형한 것에 대해, 그리고 전란 중에 자신의 조카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가슴이 저릴 정도로 비통한 후회를 하고 있어서 보검을 들며 늘 아들과 조카를 생각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왕은 더 이상 사람들이 이전에 알던 그 기사들의 왕이 아니었다.

     

    그렇게 왕궁의 한 구석에 칩거하기를 며칠, 왕은 결국 왕궁을 떠나,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본래 그는 홀로 떠나기를 원했으나, 존귀한 존재를 사람들은 홀로 떠나 보내기를 원치 않았고, 결국 그를 충실히 따르던 기사 한 명과 수행원 10 여 명만이 그를 따라 나섰다. 그가 입고 있던 갑주는 왕이 사람들로 하여금 버리도록 하였으며, 그 이후 그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그 무구들이 버려지지 않았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모양.

     

    노왕은 하얀 옷차림만을 하고, 허리에 자신의 오랜 동반자였던 보검과 아들이 가져갔다가 반란 이후 자신이 되찾은 보검들만을 찬 채로 길을 나섰으며, 그는 이제 막 초로에 접어드는 나이였건만, 그간의 괴로움 때문인지 정정하였던 왕은 그 시점에서는 백발과 흰 수염이 성성한 노인처럼 변해 있었다. 왕관마저 내버린 노왕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흡사 옛 시대, 왕을 보필하였던 마법사의 모습 같다하였으며, 임금과 신하가 서로 닮을 수 있다고 서로 입모아 말했다.

     

    모든 것을 내버린 노왕의 목적지를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조차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가 그저 동쪽 방향을 향해서만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수많은 나날들을 그저 걷고 머무르기만을 반복하던 노왕의 여행은 그 도중에 검은 상복 차림을 한 어떤 여인의 초라한 거처에 이르고 있었다. 여인을 보자마자 그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서쪽 지대에서 만났던 '호수의 일족' 에 있던 여인으로 아들이 입궁하면서 그와 결별한 이래로 동쪽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여인을 찾았던 서쪽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며, 그 역시 여인을 그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서쪽 지대에서 만났을 무렵,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미인이었던 그 여인,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미모도 점차 바래지고 있었던 여인을 왕 역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채로 만나면서 서로 간의 감회가 상당했을 것으로 여기어지지만, 그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당시 노왕은 여인을 처음 만난 이후, 사적인 대면을 할 때에는 그의 거처에 있었으며, 다른 이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알려진 노왕과 여인의 대화는 이들이 결별할 즈음에 있었다. 노왕은 자신의 보검, 그리고 아들이 가졌던 보검을 여인에게 건네려 할 즈음의 부탁으로, 노왕은 그 때, 여인에게 자신의 검들을 가져 달라 부탁했으며, 그것이 한 쌍의 보검들을 노왕이 굳이 가져간 이유였다. 여인은 그 부탁을 듣고 심히 놀랐으며, 수행하던 이들 역시 심히 놀라고 있었다, 노왕은 자신은 이제 통치자로 있을 자격이 없으며, 그래서 왕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는 보검들을 가질 자격도 없다고 말했던 것으로 그 말에 수행하던 사람들 모두 술렁이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수행원들을 더욱 심란케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노왕은 한 동안 과거의 자신을 대신할 왕이 나타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할 '슬픈 시대' 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왕은 언젠가 세상을 평화롭게 할 현명한 군왕이 나타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그 날을 기다리며 굳세게 살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먼 훗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심란해진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 왕이 도래하게 될 날이 올 걸세. 그 때가 되면, 그러한 자질이 있는 현명한 자가 왕이 되려 한다면, 내가 건네었던 이 보검들을 그 자에게 건네주게. 이 보검들이 그에게 신의 축복을 전해줄 것이야. 그리고, 누군가가 성배를 찾으라 말하면, 그 명령은 거짓이라 알려주게, 나라 일에서 백성들을 보살피고, 나라 살림을 굳건히 하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전해주게."

     

    - - -

     

    "...... 라고, 노왕은 부탁을 하였지, 그리고 모든 무구들을 떠나 보낸 이후, 왕은 뭐 하나 짚을 것이 있었으면 한다는 여인의 부탁에 따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면서 여인과 결별하고 다시 길을 나서려 하였지만, 여인은 그런 그를 따라 나서려 하였어, 이후, 헤어지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던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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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마지막 발걸음은 동쪽 해안가, 작은 배 앞에서 멈췄다. 거기서 왕은 자신의 곁에 끝까지 남은 기사 한 명만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면서 그를 따라온 수행원들과 여인들, 그리고 소식을 듣고 해안가를 찾아온 몇몇 아이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으니, 그 부탁은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

     

    "이제 왔던 길을 따라 그대들의 왕성으로 돌아가게, 부탁했던 바대로, 언젠가 도래할 좋은 시대를 기다리며,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주게나."

     

    - - -

     

    "....... 마치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 이후, 그는 작은 배를 타고 서쪽 먼 바다를 향해 떠나갔지. 그리고 다음 날, 배는 돌아왔지만 왕은 돌아오지 않았어, 배에 탄 이는 직접 노를 저어가며 배를 움직였던 기사 단 한 명뿐이었던 게지.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 기사에게 왕이 그에게 무슨 말을 남겼느냐고 물었고, 이에 기사는 그 물음에 우선 옛 왕이 섬의 서부 해안 근처의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았음을 알렸고, 이후에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우선 '이제 그만 돌아가라' 라고 말한 이후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라는 마지막 지시를 내렸음을 이어 알렸지. 이후, 사람들은 각자 있을 곳으로 해안가를 흩어지며 떠나갔고......."

     

    이후, 그는 '그렇게 한 명의 왕과 왕국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어느 전설의 왕 그리고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께서는 이 곳이 그 당시, 왕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 곳일 것이라 생각하시고 계신가요?"

    이 물음에 루시언 노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그 때만큼은 확실히 답이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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