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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고양이의 이야기
    Sylphid 4th/The Land of the Cats 2022. 3. 31. 00:20



    소설에서 언급된 사항들은 실제 지역 및 사건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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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그가 처음으로 눈을 뜬 곳은 빛으로 감싸인 어떤 공간 안의 작은 유리 방이었습니다. 유리로 이루어진 칸막이들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 너무도 작고 여린, 머리 위에 세모꼴의 자그마한 귀가 달린, 얼굴에 비해 큰 눈을 가진 하얀 생명체의 첫 거주처였습니다. 자신의 공간 주변에는 또 다른 칸막이에 둘러싸인 공간들에 자신과 같은 어린 생명체들이 공간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칸막이들 안에 하나씩 갇혀 있던 어린 생명체들의 눈들이 서로 마주칠 때가 있었고, 생명체들이 서로가 서로를 마주볼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작은 공간 속에서 새하얀 여린 생명체가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 공간의 문이 열리고 공간으로 어떤 큰 존재들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수컷 하나, 암컷 하나. 이들은 공간의 주인인 큰 수컷을 향해 다가갔고, 잠시 후, 공간의 주인은 공간의 한 구석에 나란히 놓인 유리 방들 그리고 방 안에 자리잡은 생명체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공간의 주인은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린 생명체들 중에서 새하얀 생명체에게 다가가 그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안아 한 쌍의 존재들에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후, 하얀 생명체의 거주지가 바뀌었습니다. 하얀 생명체는 가방처럼 생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그 울타리는 공간을 찾아갔던 한 쌍의 존재들에 의해 드디어 공간의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얀 생명체는 공간의 주인 그리고 그를 만났던 한 쌍의 존재에 의해 공간 밖의 세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울타리가 거대한 탈 것에 실리고, 그 이후, 이윽고 탈 것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는 계속 흔들리기 시작했고, 하얀 생명체는 몹시 불안해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에 거대한 존재들은 따뜻한 목소리로 그를 진정시키려 하였지만 하얀 생명체는 쉽게 진정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 탈 것이 멈추고 울타리는 거대한 존재의 거주지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 안에서 울타리의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밝고 따뜻한 어떤 공간의 내부였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난 이후에 처음으로 밟아보는 바닥, 너무도 낯선 공간이라 위험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집의 주인들이었던 한 쌍의 존재들은 그를 조심스레 보살피려 하였으며, 늘 자신의 곁에 있으면서 늘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따스한 느낌의 목소리에서 그들이 자신을 따스하게 맞이하고, 따뜻하고 다정하게 보살피려 하고 있음을 알 수는 있었습니다.

    세상에 의해 '고양이' 라 칭해진 이 생명체는 '사람' 이라 칭해지는 존재들의 집에 도착한 이후, 사람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집의 주인들은 늘 자신을 '리아' 라 부르고 있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름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가 집에 도착한 이후, 하나둘씩 그가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놀이기구 그리고 놀이 시설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었으며, 때마다 집 주인들이 놀이 기구로 하얀 고양이와 함께 놀아주며 그의 지루함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밖으로 나가서 저녁 즈음에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그 동안 하얀 고양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마련해 준 놀이 기구, 놀이 시설들에 의지해 심심함을 달래고 있다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고는 했습니다. 놀이 기구와 놀이 시설에서 노는 것이 즐거워도 혼자 노는 것보다는 모두 다 함께 노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즐거웠고, 집 주인들 역시 하얀 고양이 리아와 만나는 것을 삶의 낙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집 주인 사람들은 리아를 자신들의 자식처럼 대하고 있었으며, 리아 역시 집 주인 사람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여기고 따랐습니다.

    그렇게 1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람의 손바닥보다도 작았던 여리고 작았던 고양이는 어느덧 집 주인 사람들의 반 만큼 커져 있었습니다. 집 주인 사람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으면서 고양이는 예쁘고 늘씬한 고양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1 년 동안 하얀 고양이는 집 주인의 집에서 너무도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으며, 그래서 집 주인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안에서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집 안에는 주인 사람들이 아기 사람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입니다. 생명의 새로운 탄생에 하얀 고양이 역시 무척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얀 고양이 리아는 새롭게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자신의 동생으로서 받아들이고, '부모' 들이 자신에게 대한 것만큼, 자신 역시 동생을 지극히 보살피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마침 그 역시 아이들의 엄마가 될 나이였고, 이는 앞으로 엄마 고양이가 될 것에 대한 예행 연습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식탁에 마주보며 앉아있는 주인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전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들에게서는 매우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며, 그들의 대화에서는 무척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는데, 왜 그들은 이렇게 우울하게 대화를 하고 있을까?' 불길함을 느끼며, 하얀 고양이 리아는 불안 속에서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안감과 불길함은 그의 잠을 이겨낼 수 없었고, 결국 눈이 감기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불안감 그리고 불길함의 심정 역시 그에게서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주인 가족들 중 수컷 어른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정성 어리게 그를 끌어 안더니, 그를 자신이 어렸을 때 집으로 오게 했던, 그리고 병원과 집을 오갈 때마다 이용했던 가방 모양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얀 고양이 리아는 늘 큰 탈 것 안에 들어갔으며, 탈 것이 움직일 때마다 울타리가 늘 흔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흔들림이 그를 불안케 했지만 그 때마다 가는 곳은 늘 좋은 곳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그 흔들림이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도 하얀 고양이 리아는 집 주인인 수컷 어른이 자신을 또 어디 좋은 곳으로 데려가나 보다, 싶은 생각을 하며 흔들림을 참아가며 설레임 속에서 탈 것 속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때만큼은 이상하게 탈 것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지만 집 주인이 어딘가 또 좋은 곳을 알고 그 곳으로 자신을 보내려 하는가 보다고 하며, 불안감을 애써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창 시간이 지나 도착한 곳은 낯설고 또 불길한 분위기의 어떤 건물 앞이었습니다. 어른 수컷은 건물 앞에 이른 어떤 사람들 앞에서 심각한 대화를 주고 받더니, 하얀 고양이가 머무르는 가방 모양의 울타리를 그 사람에게 건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모종의 대화를 주고 받더니, 홀로 탈 것에 타 버렸습니다. 그리고 탈 것은 그렇게 하얀 고양이를 놓아두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 - -

    II.
    이후, 싸늘하고 차갑기 이를데 없는 은빛의 벽 그리고 은빛의 창살로 둘러싸인 공간이 리아라 칭해졌던 하얀 고양이의 새 거주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저 거주 공간에서 '부모' 가 돌아오기를 한 없이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그의 집 아닌 새 집 주변에는 여러 동물들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어두웠고, 또 그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너무 어둡고 무서워 그들에게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빨간 목줄이 채워진 채로 싸늘한 벽과 쇠창살로 둘러싸인 방에서 그저 한 없이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엄마, 아빠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뒤쪽에서 누군가 하얀 고양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저 창살 너머만 바라보던 하얀 고양이는 그제서야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그 곳에는 갈색과 검은색, 하얀색 털을 가진 늙은 고양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곳이 어디인 줄 알고는 있어?" 늙은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그리고 늙은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이 곳은 '동물 보호소' 라 칭해지는 곳이라고. 그리고 주로 '인간' 이라 칭해지는 존재들에게 거두어졌다가 그들에게 버림 받은 가엾은 '버림받은 자들' 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간혹 버림받은 자들이 거두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수용소에 들어간 이후로 그런 꼴은 보지도 못했어." 늙은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늙은 고양이는 자신이 어떻게 보호소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주인이라 칭해진 '인간' 들의 집에서 살면서 그들을 가족으로 따르며 살았지만 결국 늙으면서 병이 들었는데, 병을 치료해 준다고 데려갔던 곳이 이 곳으로, '인간' 들은 자신을 이 곳에 놓아두고 '도망가'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한 때는 그들이 돌아와 줄 것이라 믿었어,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 그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아."

    늙은 고양이는 체념하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무서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동물 보호소' 라는 곳에서 인간들은 '버림받은 자들' 의 신상을 공개하고 그들을 데려갈 수 있는 이들을 물색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도 데려갈 이들이 없는 자들은 보호소의 '인간' 들이 어떤 '방주' 안으로 데려가며,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간 자들 중에서 '방주' 에서 나간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었어. 그것을 몇 번 반복해서 보며 알았지, 그 방주에 간택된 자들은 '세상의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존재' 로서 이 세상에서 생명이 거두어져야 한다는 것을. '거두어지지' 않으면 '거두어진다', 그것이 이 수용소의 현실이야."

    그리고 늙은 고양이는 체념하는 듯이 말했습니다, 자신도 결국 이전에 떠나가 버린 '버림받은 자들' 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주변에서 체념하며 슬퍼하는 이들을 돌아보게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들 그리고 자신조차도 결국 이전에 떠나갔던 자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고. 그리고 하얀 고양이에게 그 역시 그렇게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이 곳에서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리고 늙은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운명은 가만히 있는 자들의 편이 아니야, 움직이는 자들의 편이지, 누군가가 말했었던 기억이 나. 그 말대로야, 운명은 늘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자들의 편이 아닌, 개척하고 나아가는 자들의 몫이었어, 먹이는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고, 적극적으로 뛰어다니고 할퀴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과도 같아."

    그리고 하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어떻게 살았느냐고. 그러자 하얀 고양이가 답했습니다, 어떤 하얀 공간에서 살다가 '인간' 이라 칭해지는 이들에게 거두어진 것이 어렸을 때의 기억, 그 전부라고. 그러자 늙은 고양이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 소위 말하는 '품종 동물' 로 태어나 동물 가게에서 아기 시절을 보냈었구나. 하기는, 그 어린 나이에 '인간' 에게 거두어지고 집 고양이가 되면 다 거기서 거기라 그런 출신 따위, 의미 없기는 하더라. 그런 애들의 특징이 뭐냐면, 무슨 일이든 누군가가 해 주기를 원한다는 거야, 먹는 것부터 무엇이든. 그래서 이렇게 버려지고 난 이후에도 '인간' 들이 자기를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지, 지금의 너처럼."

    그리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한 때는 누군가가 자신을 먹여주고 자신과 놀아주고, 자신을 재워주는 것에 늘 익숙했다고. 그러면서 자신도 어렸을 때에 인간에게 거두어져 그러한 삶에 너무 익숙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평생토록 계속될 것이라 믿었건만, 그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얀 고양이는 물었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배신을 당했느냐고. 그러자 늙은 고양이는 답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 몹쓸 병을 앓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인간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하얀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들에게 '버림을 받았는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인간들의 가족에게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갑자기 버려지고 말았다고. 그리고 왜 인간들이 자신을 버렸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고양이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2 ~ 3 일 동안, 늙은 고양이는 이전에 집 고양이 출신들 뿐만이 아니라 동물 보호소에는 야생 고양이들도 자주 들어오곤 했다고 말하고서 그들로부터 들었다며 많은 이야기들을 하얀 고양이에게 해 주었습니다. 늙은 고양이는 야생 고양이들에게도 나름의 문화와 관습 그리고 신앙이 있었다면서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고양이들에게서 대를 이어 전승되어 온 전설들까지 늙은 고양이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가능한 모든 것들을 하얀 고양이에게 전해주려 노력했습니다, 비록 하얀 고양이가 그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늙은 고양이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방의 한 구석으로 다가가며 하얀 고양이에게 따라오라 하였습니다. 그 한 구석에는 좁은 틈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겨난 틈인지는, 그 틈이 왜 생겨나고 말았는지에 대해 자신은 도저히 자신은 알 수 없었지만 늙은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의 작은 체구를 보며 그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비장하게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그 놈들이 창살을 열고 들어올 거야. 그 순간에 네가 여기 있으면 끝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구멍이 좁다고 하면 주변의 이들이 도와줄 테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한 다음에 하얀 고양이가 들어와서 주인이란 것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이미 결의했음을 밝히고서 비록 자신이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얀 고양이가 살아서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곳으로 들어온 것들 중에서 인간들에게 간택받지 못한 것들은 전부 이 곳에 갇혀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지. 하지만 네 년까지 그렇게 되는 꼴을 봐 줄 수는 없어. 적어도 네 년만큼은..... 이 감옥에서 스스로 빠져나가 스스로 세상으로 뛰어든 이 곳의 유일한 존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정을 지나 시간이 새벽을 향하고 있을 무렵, 힘 없이 잠들어 버린 하얀 고양이를 늙은 고양이가 깨웠습니다. 선택의 여지는 달리 없었습니다, 늙은 고양이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그 구멍을 필사적으로 넘어가려  했습니다. 보통의 동물들이라면 이런 작은 구멍은 빠져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얀 고양이는 어떻게든 구멍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가 그렇게 구멍에서 빠져나갔을 때, 늙은 고양이가 구멍 너머에서 구멍 밖으로 나간 하얀 고양이를 눈빛으로 배웅해 주었고, 하얀 고양이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용소에서 며칠 간이나마 함께 해 주었던 늙은 고양이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얀 고양이는 해어진 철조망의 틈을 통해 동물 보호소라는 이름의 수용소의 담장에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호소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 이후에도 하얀 고양이는 동물 보호소 직원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무작정 그 너머의 나무들 사이를 달려 나아갔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동물 보호소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뛰어갔습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달리고 달리기를 반복해 갔습니다.

    - - -

    III.
    하얀 고양이는 그 이후에도 며칠 간 숲길을 떠돌았습니다. 도중에 비가 오고 있었지만 그는 하릴 없이 숲길을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배고픔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동물 보호소에서 만났던 늙은 고양이의 격언을 떠올리며 적극적으로 숲에서 사냥을 하려 하였지만 그간 사냥이라고는 인간의 장난감 이외에는 하지 않은 집 고양이였던 그에게 사냥으로 먹이 쟁취하기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 이후에도 며칠을 사냥과 먹이 찾기를 위해 안간힘을 다 했지만 모두 부질 없는 노력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떠돌면서 온 몸이 찢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동물 보호소의 벽과 철조망을 뚫으면서 벽과 철조망의 날카로운 부분에 온 몸의 살이 찢겨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처가 난 부분을 핥아서 달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굶주리며 헤매던 어느 날, 숲에서 그는 어떤 검은 고양이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얀 고양이를 보자마자 그가 굶주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먹을 것을 줄 테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야생 고양이의 제안에 하얀 고양이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도 굶주리고 상처 입은 그에게 검은 고양이의 제안은 너무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얀 고양이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검은 고양이는 그를 자신의 거처인 어떤 나무 아래의 토굴 속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토굴 속에서 하얀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와 며칠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얀 고양이가 깨어났을 때,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토굴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잠들어 있었을 새벽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검은 고양이는 토굴에서 떠났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얀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상처를 어떻게든 치료해 주었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기에 그에게 의지하려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하였기에 검은 고양이가 토굴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검은 고양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자신이 동물 보호소에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인간들을 기다렸을 때처럼 토굴에서 자신을 남기고 떠나간 검은 고양이를 그저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검은 고양이를 며칠 동안 기다리던 어느 날, 그는 그는 차디찬 동물 보호소의 바닥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곳에는 여러 늙은 동물들이 딱한 듯이 하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지 않아 그는 보호소의 유일한 말 상대였던 삼색 늙은 고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얀 고양이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냐."

    라는 목소리가 그에게서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마치 그를 강하게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하얀 고양이가 화들짝 놀랐을 때, 주변의 모든 것이 다시 토굴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 때처럼 이번에도 그는 버림 받았다는 것을.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늙은 고양이에게 심적 위로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고양이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에는 같은 종족에게 버림을 받은 것에 대한 충격이 너무도 컸고, 또 의지할 이 하나 없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얀 고양이는 괴로움 속에서 다시 숲길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숲길 사이로 인간들이 지나다니고 있을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산길을 내려가려 하였습니다.

    도중에 그의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숲으로 뒤덮인 산길에서 내려와 평지에 도달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호수가 근처의 폐가에 자리를 잡고 그 곳을 자신의 새로운 거주지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에게서 작은 생명들이 태어나 그의 배 앞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후, 하얀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새로이 태어난 아기들이 자신의 젖꼭지를 물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얀 고양이는 태어난지 1 여년 만에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굶주리고 기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얀 고양이는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을 정성스레 돌보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아기들은 계속 성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털이 자라나고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하얗고 검은 무늬를 가진 고양이 2 마리, 삼색 고양이 2 마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움직임도 점차 고양이다워지고, 활발해지고 있었습니다.

    - - -

    IV.
    엄마 고양이가 되면서 하얀 고양이의 일상은 새롭게 변해 갔습니다. 평소에는 늘 아이들의 젖을 먹이고 보살피다가 틈틈히 짬을 내어 배고픔을 해결하러 나가고는 했습니다. 다행히도 엄마 고양이의 거처인 호수가 근처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곳에서 엄마 고양이는 어떻게든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인간들의 집에 있을 때 이후로 느끼는 배부름의 축복, 비록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서 배고픔을 채우는 삶이기는 했지만 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의 처지에 늘 감사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동물 보호소를 탈출한 이후의 늘 굶주리는 힘겨웠던 삶에 비하면 너무도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네 아이의 엄마로서 엄마 고양이의 책임감은 컸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은 힘겨운 생애를 겪어 왔습니다, 엄마 고양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시련이 닥쳐 오더라도 자신의 아이들만큼은 결코 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걸음마를 떼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한결 같이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주변의 나무들을 타고 올라다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늘 기운이 없고, 피곤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과 그 호수를 배경으로 초목 사이를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엄마 고양이는 그저 흐뭇할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엄마 고양이의 걱정은 점차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젖을 뗀 아이들에게 먹이를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늘 좋은 먹이를 주고 싶어했지만 기운 약한 엄마 고양이에게 그러한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아기들을 위해 엄마 고양이는 인간들의 마을을 오갔습니다. 마을에서 인간들이 제공해 주는 먹을 것을 가져와 아이들을 위해 물어다 주었습니다. 자신의 먹을 몫이 없어도 아기들을 위한 먹이는 꼭 챙겨 왔습니다.

    힘겨운 삶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습니다, 인간의 집을 떠나간 이래로, 아니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지금 같기만 하면 좋을 텐데."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 놀다가 엄마 곁에서 잠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 고양이는 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엄마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들도 엄마의 곁을 떠날 날이 오게 되겠지만 그 때까지는 함께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엄마 고양이는 아기들의 천진한 모습을 볼 때마다 기원하고 또 기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늘 활발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아기 고양이들이 갑자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식욕이 왕성하던 아이들이 먹을 것을 잘 먹지도 못한 채, 집 주변의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 안에서 그저 기운 없이 웅크리거나 누워 있기만 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토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어쩌다가 아이들의 변을 보았을 때, 엄마 고양이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변이 피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 고양이가 마을 근교에서 마을을 오가며 아이들을 위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마을에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있던 수없이 많은 고양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의 거리에 태어난 수많은 고양이들이, 이전까지는 건강하기만 했던 공원의 아이들과 성묘들의 시신이 도처에 널려 있었고, 뚱뚱했던 몇몇 고양이들마저 수척해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마을에 얼마나 많은 고양이들, 특히 아기 고양이들이 죽었는지 고양이들 중에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언제 자신들도 병 때문에 죽을지 몰라 그저 두려워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마을을 오가면서 엄마 고양이 역시 기운이 쇠하고, 식욕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아픔을 참아가며 마을을 오가고 있었는데, 마을의 고양이들을 휩쓸어버린 이러한 병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병으로 기운을 잃은 아이들을 보며 엄마 고양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던 엄마 고양이는 그저 기운을 잃은 채, 몸서리를 치는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로 그들을 따스히 하고, 그들을 핥으며 아이들의 병이 금방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병은 낫지를 않았고, 아이들의 몸은 더욱 야위어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새벽 때,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엄마 고양이는 다급히 잠에서 깨어나 다급히 아이들의 동태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아이들 중 하나가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참하게도 이러한 일은 이번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다른 아이가,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또 하나의 아이가 그렇게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엄마 고양이에게 남겨진 아이는 단 하나. 엄마 고양이는 남은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을 땅에 묻고서, 남은 아이라도 살려야 하겠다는 일념 하에 아이를 물고 자신이 오가던 마을을 지나 마을 너머에 있는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뛰어서 도달한 그 거리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엄마 고양이는 연신 인간의 집과 집들을 돌아다니며 구슬피 울부짖었습니다.

    동물 보호소를 탈출하면서 다시는 인간과 가까워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여러 달이 지난 후, 엄마 고양이는 아이에게 닥쳐온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라는 절망 속에서 다시 인간의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자신이 물고 있던 아이를 인간의 집 바로 앞에 놓아두고서 도와달라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의 대문을 열고 나타난 인간 암컷과 어린 인간 수컷이 아이의 상태를 보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아이에 대한 걱정의 심정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는 인간들을 보며, 엄마 고양이는 자신의 아이에게서 멀어지려 하며 울었습니다.

    "저를 대신해 이 아이를 잘 부탁해요. 부디 이 아이를 평생 잘 보살펴 주세요."

    몇 번 구슬피 인간들을 바라보며 말하고서 엄마 고양이는 남은 아이를 인간들에게 맡기고는 조용히 아이와 인간들의 곁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는 그 옛날의 자신처럼 버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의 아직도 어렸을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야 했던 슬픈 결말과 함께 끝나고 말았습니다.

    - - -

    V.
    이후, 엄마 고양이는 자신의 옛 거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맡긴 인간 모자가 아이를 데리고 간 병원 근처의 골목을 거처로 삼았습니다. 근처의 인간들이 너무도 야위고 쇠약해진 엄마 고양이를 측은히 여기며 먹을 것을 주었지만 엄마 고양이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생명이 경각에 달해 있음에 먹을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는 먹을 것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병이 나아 건강해지는 모습을 어떻게든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후, 인간 모자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으며, 어린 인간은 자신의 아이를 안은 채, 그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한 동안 인간 모자는 병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 인간 모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아이를 데리고 수심에 잠긴 채 떠나간 이후, 3 일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였습니다. 그 인간 모자가 병원에 이르자마자 처음 병원에 갔을 때보다 더욱 야위어 버린 아이를 안은 채로 어린 인간이 다급히 병원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이어서 인간 암컷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은 다시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빈 손으로 병원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 엄마 고양이는 골목에서 잠들었다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어둠의 소용돌이에 끌려 들어가는 자신의 아이였습니다. 너무도 놀라 그 아이를 향해 뛰쳐 나아가려 하였지만 그 때에 그의 눈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거리만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난히 동물 병원의 등불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이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엄마 고양이는 동물 병원 안으로 다급히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이미 병이 깊어지며 몸은 쇠약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를 만나려 한 것이었습니다.

    동물 병원의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창문들 중 하나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동물 보호소에서 만났던 늙은 고양이가 자신을 탈출시키려 했던 때를 상기하며 가늘어진 자신의 몸으로는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 창문의 틈으로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그 후, 엄마 고양이는 자신의 아이가 잠들고 있을 곳을 어떻게든 찾아보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국 자신의 아이가 잠들어 있을 법한 진료실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섰을 무렵, 엄마 고양이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들어있던 것과 같은 유리 상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의사 그리고 간호사라 칭해진 인간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무시한 채, 엄마 고양이는 책상 위에 놓인 유리 상자를 향해 뛰쳐 올라가 상자 안의 아이를 보려 하였습니다.

    잠들어 있는 듯한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편히 잠든 것 같아 엄마 고양이는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엄마 고양이는 아이가 숨을 쉬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 모습을 보며 이전에 자신의 곁을 차례로 떠나갔던 세 아이들을 떠올리며,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고 핥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몸에서는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결국 엄마 고양이는 편히 잠든 듯이 싸늘해진 아이의 육신 앞에서 천장,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 역시 자신의 형제자매들의 뒤를 따라가고 만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맡겼던 인간들 그리고 병원의 인간들조차 자신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고양이는 그런 인간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서 아기 고양이를 병마에서 구해내고자 했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 고양이는 의사 인간이 치료를 권하고 있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엄마 고양이는 의사의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걱정과 안타까움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던 의사 인간을 뒤로 하고서 엄마 고양이는 동물 병원의 정문을 통해 동물 병원을 나섰습니다.

    - - -

    VI.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새하얀 털이 자랑스러운 하얀 고양이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의 모습은 더 이상 하얀 고양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몸은 마을을 휩쓴 전염병에 감염된 여파로 쇠약해져 있었고, 늘씬하고 예쁘장했던 모습은 초췌하고 앙상해져 있었으며, 어떤 시련 속에서도 강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그의 표정에는 더 이상 그런 의지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얀 고양이에게 남은 소망은 단 하나였습니다, 자신을 저버렸던 그 인간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인간들의 행동이 그의 삶을 뒤틀어버린 가장 큰 원흉이었겠지만 하얀 고양이에게는 이제 그 인간들에 대한 복수심도, 원망조차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왜...?
    왜...?

    왜...?


    왜, 나를 그 때, 버렸는가?
    나를 버려야 했던 이유가 있었는가?

    그럼에도.... 나를 꼭 버려야 했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

     

    그것에 대한 답을 원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 하얀 고양이는 아이를 맡겼던 인간들이 있던 거리를 떠나 무작정, 하염없이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이 자신의 옛 주인이었던 인간들이 있는 곳을 향한 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얀 고양이는 그저 앞길을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길을 나아가면서 문득 예전에 동물 보호소에서 늙은 삼색 고양이가 해 주었던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고양이들은 착하게 살면 곧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나쁘게 살면 나쁜 곳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설화였습니다. 그 설화를 떠올리며 하얀 고양이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은 전생에 무척 나쁜 삶을 살아갔던 것일까?" 라고. 하지만 그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 바라는 것은 이미 자신의 곁을 떠나간 아이들이 행복한 곳에서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 - -

    VII-A.
    그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길 위를 걷고 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커져만 갔고, 마침내 하얀 고양이의 시야를 완전히 덮을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와 함께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하얀 고양이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하얀 고양이는 다시 깨어났습니다. 자신의 옛 털 색깔과도 같은 새하얀 빛. 예전 같았으면 빛에 의해 자신의 형체가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미 잿빛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몸은 빛 속에서 너무 선명하게 그 모습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너머로 작은 고양이들의 형상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미 자신의 곁을 떠나가 버린 줄만 알았던 자신의 네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엄마에게 자신들의 곁으로 오라는 듯이. 하얀 고양이는 그 아기 고양이들의 형상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의 형상과 함께 조용히 빛 속에서 어딘가를 향해 걸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할머니께서는 어디에 계실까? 아니, 벌써 다른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셨겠지?"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하얀 고양이는 동물 보호소에서 만났던 그 늙은 삼색 고양이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의 하얀 고양이는 그의 고단했던 생애의 어떤 순간보다도 더욱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

    길의 한 곳에 트럭 한 대가 등을 밝힌 채 서 있었다. 트럭에서는 운전수가 하얀 장갑을 끼고, 입가를 마스크로 가린 채로 비닐 봉지를 들고 내리면서 자신이 몰고 있던 트럭 앞에는 초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고양이가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운전수가 말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진짜."

     

    - - -

    VII-B.
    그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길 위를 걷고 있으면서 하얀 고양이는 희망의 빛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밤길을 조용히 걷고 있던 그에게는 어떤 빛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에 잠긴 길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길 위로 한 번씩 거대한 탈 것이 등불을 밝히며 길을 지나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얀 고양이는 생각했습니다, 그 탈 것을 탈 수 있다면 옛 주인의 처소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탈 것에 태워달라 부탁하려 했지만 이내 곧, 하얀 고양이는 포기했습니다, 그것이 부질 없는 노력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한 번씩 탈 것들이 자신을 지나쳐 가는 모습을 보이는 길 위를 다시 조용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하얀 고양이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낮과 밤이 바뀌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얀 고양이의 두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그저 공허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그 때의 하얀 고양이는 자신의 원념, 자신의 삶을 궁지에 몰아 넣었던 어떤 존재들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원념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발걸음은 마침내 어떤 인간들의 거리에 이르렀고, 마침내 교회 부근에 있는 어떤 시설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보았던 탈 것들에 비해 너무도 큰 탈 것들이 오가는 곳. 마치 거대한 건물과도 같은 커다란 탈 것들이 오가는 건물 앞에 이르렀을 때, 하얀 고양이는 비로소 건물의 입구 앞에 앉았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제서야 그간 가지지 못했던 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하얀 고양이는 다시 깨어났습니다. 예전에 잠시 인연을 가졌던 검은 고양이의 털 색깔과도 같은 검은 어둠. 예전 같았으면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의 털 색깔이 빛나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그의 털 색깔은 어둠 속에서 눈에 띌 것 같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그 너머로 작은 고양이들의 형상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미 자신의 곁을 떠나가 버린 줄만 알았던 자신의 네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엄마에게 자신들의 곁으로 오라는 듯이. 하얀 고양이는 그 아기 고양이들의 형상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의 형상과 함께 조용히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둠의 저편에 빛나는 문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얀 빛에 감싸인 아이들이 인도하는 문을 향해 하얀 고양이는 그저 조용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 - -

    VII-C.
    그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길 위를 걷고 있으면서 하얀 고양이는 희망의 빛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밤길을 조용히 걷고 있던 그에게는 어떤 빛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에 잠긴 길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길 위로 한 번씩 거대한 탈 것이 등불을 밝히며 길을 지나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얀 고양이는 생각했습니다, 그 탈 것을 탈 수 있다면 옛 주인의 처소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탈 것에 태워달라 부탁하려 했지만 이내 곧, 하얀 고양이는 포기했습니다, 그것이 부질 없는 노력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한 번씩 탈 것들이 자신을 지나쳐 가는 모습을 보이는 길 위를 다시 조용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하얀 고양이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낮과 밤이 바뀌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얀 고양이의 두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그저 공허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그 때의 하얀 고양이는 자신의 원념, 자신의 삶을 궁지에 몰아 넣었던 어떤 존재들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원념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발걸음은 마침내 어떤 인간들의 거리에 이르렀고, 마침내 교회 부근에 있는 어떤 시설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보았던 탈 것들에 비해 너무도 큰 탈 것들이 오가는 곳. 마치 거대한 건물과도 같은 커다란 탈 것들이 오가는 건물 앞에 이르렀을 때, 하얀 고양이는 비로소 건물의 입구 앞에 앉았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제서야 그간 가지지 못했던 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하얀 고양이는 다시 깨어났습니다. 예전에 잠시 인연을 가졌던 검은 고양이의 털 색깔과도 같은 검은 어둠. 예전 같았으면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의 털 색깔이 빛나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그의 털 색깔은 어둠 속에서 눈에 띌 것 같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그 너머에는 인간들의 형상이 보였습니다. 4 명의 다소 어린 암컷 인간들로 머리에는 자신과 같은 귀를 달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 형상을 보자마자 하얀 고양이는 너무도 놀라며 선뜻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저 가까이 오지 말라며 위협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그들이 있는 쪽에서 여린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엄마, 이 쪽이에요, 이리로 와요."

    "엄마......?" 하얀 고양이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너무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대체 저 암컷 인간들은 누구인지, 왜 자신이 인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이전에 만났던 인간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음은 분명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너무도 두려웠지만 하얀 고양이는 언제까지 어둠 속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자리잡은 그 너머에는 빛나는 문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암컷 인간들은 이윽고 그 문을 향해 나아가고, 하얀 고양이는 그들 중 한 명에 안긴 채로 그들과 함께 빛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이러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미래에서 왔어요......"


    - - -


    VII-D.
    그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길 위를 걷고 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커져만 갔고, 마침내 하얀 고양이의 시야를 완전히 덮을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와 함께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하얀 고양이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하얀 고양이는 다시 깨어났습니다. 자신의 옛 털 색깔과도 같은 새하얀 빛. 예전 같았으면 빛에 의해 자신의 형체가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미 잿빛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몸은 빛 속에서 너무 선명하게 그 모습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빛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이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대의 모든 행적을 지켜 보았노라. 지금 그대가 바라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니겠는가, 너무도 소중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는 것, 그리고 너의 생을 짓밟아버린 존재에 대한 원한을 풀어가는 것."

    그리고 목소리는 하얀 고양이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대의 이러한 소원들 중 하나만을 들어줄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그대의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 아이들은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들이 다시 네 곁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대와 잠깐이라도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의 행적을 무로 되돌리는 것, 이후에는 그대와 만났던 모든 이들이 더 이상 그대를, 그리고 그대와 함께 하며 가졌던 순간들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자아, 선택해라."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을 내다버린 인간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을 내다버리고 자신을 비웃는 듯한 인간들의 모습. 그 인간들이 자신을 놀리며 희희낙락했었을 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말에 하얀 고양이의 복수심은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라도 그는 자신을 장난감처럼 쓰다 버린 그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에 자신에게 진지한 충고를 이어갔던 늙은 고양이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것은 이미 원념에 이성을 잃은 하얀 고양이에게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 그것을 선택했다고?" 이후, 목소리는 조용히 한 숨을 내쉬더니, 씁쓸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습니다.

    "좋아, 그런 소원을 말했다면 들어주지. 단, 이를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선 그대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대의 삶이 끝나는 것은 물론, 그대의 영혼, 그대가 이 세상에 남긴 모든 행적이, 그대와 함께 했던 이들의 그대에 대한 기억과 함께 영원히 세상에서 지워지게 될 게다. 그대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 자체가 말소되고 말 것이야."

     

    그리고 이것이 의식이 흐려져 가는 하얀 고양이에게서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였습니다.

     

    "이런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기를......"

     

    ......

    그렇게 하얀 고양이의 기억 그리고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의 기억들마저 그가 만났던 이들에게서 사라져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이를 맡겼던 인간 가족들도, 그와 잠깐의 만남을 가졌을 검은 고양이도, 동물 보호소의 인간들도, 더 나아가 그를 희롱하다가 내다버린 인간 가족들조차도 그의 기억이 없어진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존재였을 뿐이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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