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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영광 법성 여행 - 2 :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Travel 2021. 11. 1. 07:30



    2021 영광 법성 여행 - 2 :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는 1998 년에 동국대학교 교수진이 학술연구, 고증을 통해 법성 지역이 백제 불교의 시작지였음을 밝혀내면서 영광군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개발한 곳이라고 합니다. 법성면의 이름인 법성은 '불법' 을 의미하는 법, 그리고 '성자' 혹은 '성지' 를 의미하는 듯한 성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불)자' 혹은 '(불)지' 라는 어구에서 두 글자를 따와 지은 이름이었다는 것이지요.

     

    요즘에도 이런 식의 두 글자 이름들은 자주 보입니다. '불타는 성전' 의 '불성', '리치왕의 분노' 의 '리분',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에서 '드군' 등......

    사면대불상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하늘이 무척 맑고, 날씨도 무척 좋아서인지 풍경들이 선명하게 잘 보이네요. 이제 늦가을에 접어들려 하고 있음에도 아직 단풍이 들지 않고 있었네요.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부용루와 사면대불상을 잇는 계단 일대를 찍은 사진입니다.

     

    마치,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의 게임마다 마지막 스테이지 직전에 볼 수 있었다는 이 광경을 보는 듯하네요..... (몇몇 게임들에서는 볼 수 없기는 했습니다)

    이후, 산길을 통해 체험관 그리고 탑원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체험관 (당시에는 체험관인 줄도 몰랐습니다) 은 폐쇄되어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고, 그래서 체험관을 바로 지나쳐서 탑원에 이르렀습니다.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에는 간다라 시대의 유물들이 다수 비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유물들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 이 탑원이지요. 가운데에 자리잡은 불탑을 중심으로 불상들이 나란히 불탑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지요. 간다라 시대의 유적 중 하나인 '따크띠바히 사원' (Takht-i-Bahi, 우르두어로 '샘의 옥좌' 라는 뜻) 에 자리잡은 주탑원을 모태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탑의 바로 앞에 있는 석등처럼 보이는 것들은 감실형 불당으로 불상과 소탑을 봉안하는 곳이라 합니다.
    - 불갑사에도 탑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마라난타의 감독 하에 설립된 듯해 보이네요.

    실물 따크띠바히 사원은 스왓(Swat) 와 뻬샤와르(Peshawar) 사이에 있는 마르단(Mardan) 지구에 소재하고 있으며, 법승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5 세기 (465 년, 서로마 제국 멸망 11 년 전입니다) 무렵에 이 일대를 휩쓴 훈족들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20 세기에 학술 조사 및 발굴이 진행되어 불탑들을 보호하는 시설까지 마련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 파키스탄의 스왓 일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곳으로 명망이 높지만 악명 높은 탈레반과의 교전이 이루어진 적도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파키스탄 전역은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여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어지간해서는 갈 생각을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간다라 일대도 마찬가지고요. 하필이면 이런 곳이 막장 국가 파키스탄의 영역이라니.....

     

    감실형 불당들 중 하나로 기둥이 사자 형태로 되어 있더라고요. 내부는 향을 피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탑원을 둘러싸고 있는 불상들 중 하나입니다. 간다라 시대의 불상들은 이렇게 수염이 나 있지요. 동북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불상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탑원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귀부인 상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유두가 보이더라고요. 간다라 양식의 부조, 석상 혹은 동상들 중에는 얇게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여인들의 복장도 상당히 노출도가 높은 편이지요. 게다가 가슴도 꽤 크게 묘사되는 편 여기에 가슴 노출이 훤히 이루어지는 경우도 보입니다. 대체로 인물상의 노출도가 높았던 그리스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여행 당시에는 인물 상은 몇몇 부처의 입상, 좌상들과 귀부인 상밖에 보지 못했었는데, 탑원에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묘사한 부조상들이 여럿 있었더라고요. 그 모습들을 자세하게 보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 많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광장으로 나아가는 계단 바로 앞에도 감실형 불당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사자 상은 아쇼카 석주라 칭해지며, 인도 최초의 통일 왕국/제국인 마우리아 제국 (마우리아 삼라지얌) 의 제 3 대 황제 아쇼카가 불교에 귀의해 불교를 왕국의 국가 신앙으로 선포한 이후에 조각되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불법에 대한 열정을 상징하는 조각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우리아 제국의 전성기는 아쇼카 사후에 끝나며, 제 5 대 황제 삼쁘라띠가 중흥기를 이끌기도 했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국가 체제가 망가지고,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침입이 이어지는 등의 원인으로 인해 쇠퇴기로 들어서게 되지요. 결국 뿌샤미뜨라 (후일 슝가 제국 초대 황제) 에 의해 최후의 황제가 살해되면서 마우리아 왕조는 멸망하게 됩니다.
    - 마우리아 제국이 쇠퇴하면서 인도 중부 데깐 지역은 사따바하나 (Satavahana) 왕국이 차지하게 되며, 이 왕조는 이후, 인도 중부 지역의 패권 국가가 됩니다. 사따와하나 왕국은 서기 3 세기까지 존속합니다.
    - 이후, 마우리아 제국의 영토에는 슝가 제국, 깐바 제국이 자리잡게 됩니다만, 마우리아 왕조만큼 오래가지는 못했지요.

    존자정입니다. 마라난타 존자를 기념하기 위한 정자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음료수 캔을 자판기를 통해 사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잠시 쉬고 있다가 홍교를 거쳐 만다라 광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휴식 도중에 마신 오란씨입니다. 이 음료수는 우연히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것 같아요. 다만, 음료수 캔은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파인애플 맛으로 저는 오렌지 맛만 알고 있었던지라, 오렌지 맛이 아니라서 다소 아쉬운 감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탄산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던 것 같아요. ㅇ_ㅇ

     

    윤여정이면 혹시 그 분이신가...... 아아, 세월이여.......

    만다라 광장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변의 4 개 귀퉁이마다 하나씩 돌을 쌓아놓은 듯한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지요. 한 가운데에는 보리수 한 그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만뜨라(mantra) 라 칭하며, 이는 '진언' 혹은 '경전' 을 의미합니다. 흔히 '만트라' 라 칭하지요.

    출처 : commandgame.tistory.com

    예전의 게임 회사명인 만트라가 여기서 유래된 듯합니다.

    이것이 보리수, 인도 보리수입니다. 단풍이 다소 들어서 잎사귀들이 약간 노랗게 물들었네요. 건너편으로 부용루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

    석가모니가 보드 가야(Bodh Gaya) 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인도에서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을 당시에 건립된 사찰들에는 (인도) 보리수를 심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 훗날 이 보드 가야에 마우리아의 아쇼카 황제가 사원을 건립하지요, 이것이 마하 보디(Maha Bodhi) 사원입니다.

    그래서 (인도)보리수는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보리수와 인도 보리수는 서로 다른 종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두 장미목에 속하기는 합니다만, 보리수나무과에 속하고 있는 일반적인 보리수와 달리, 인도 보리수는 뽕나무과에 속하지요. 우리나라에도 인도 보리수가 있으며, 열매가 상당히 크게 열린다고 하네요. 
    - 영어로 보리수는 autumn olive, 인도 보리수는 sacred fig 라 칭합니다.

    만다라 광장의 보리수를 둘러싸고 있는 석주들 중 하나입니다. 건너편으로 칠산 바다의 모습이 보이네요.

    만다라 광장에서 부용루로 향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반신상에 관한 설명문입니다. 사실 조각상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조각상이 자리잡은 한 구석에 있는 만자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사진 게재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니, 사진 자체를 안 찍었네요.
    - 만자가 나치 독일로 악명이 높아진 스와스티까 (Swastika - 쉬바쉬티카) 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양은 반대로 되어있기는 합니다만, 불교의 만자와 똑같이 보이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이유로 불교의 상징에서 만자 문양이 안 쓰이게 됐죠. 유럽에서는 이런 문양을 함부로 보이거나 하면 큰일날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특히 독일에서는).

     

    부용루 가는 계단길의 가운데 즈음에 자리잡은 부처의 흉상입니다. 바로 아래에 복전함이 있군요.

     

    부용루의 모습입니다. 벽마다 석가모니의 생애에 관한 석상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 왼편에 보이는 것이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의 모습이겠지요. 상당히 많은 상들이 있었습니다만, 여행 갔을 당시에는 석상들을 자세하게 보지 못하고, 단순한 불교 상징물의 일종으로 간주했었지요.

     

    부용루 계단 너머로 사면대불상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사면대불상이 보수 공사 중이어서 그러한지, 부용루 너머의 계단 자체를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계단 입구 쪽에 울타리 같은 것이 있더라고요) 그 너머의 계단을 올라가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계단을 올라갔다고 하더라고 사면대불상 앞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겠지요. 아쉽기는 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의 정문에 해당되는 문입니다. 상징문이라 칭하며, 일반적인 우리나라 불교 건축 양식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아치 형태의 문은 인도나 이란 쪽에서 볼 수 있을 법해 보이지요. 이슬람 모스크의 입구 같은 느낌도 줍니다.

    상징문 바깥 길의 한 곳에 자리잡은 나무에 붉은 열매가 가득히 열렸습니다. 이것도 보리수겠지요.

    칠산 바다 그리고 가마미 해변길과 모래미 해변을 잇는 법성 대교의 모습. 당시의 칠산 바다는 간조 때여서 그러한지, 갯벌이 훤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마치 황량한 계곡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하는 갯벌의 모습.

    이로서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편을 마칩니다. 다음은 숲쟁이 꽃동산과 숲쟁이 길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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