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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편] 고양이들의 나라
    Sylphid 4th/The Land of the Cats 2020. 9. 4. 13:40



    그간 머릿속에 그리고만 있었던 이야기예요,

    잊어버리기 전에 대방출 시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

     

    좀 이상한 단어들이 보일 텐데요,

    제가 구상한 인공어들입니다,

    기존의 인류를 대신한 존재들이 '기술' 했다는 설정을

    구현화한 장치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 는 묵음입니다. 이탈리아, 프랑스어의 h 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

    - ï 는 '의' 비스무리하게 읽습니다. 러시아어의 ы 를 생각하시면 편할지도?

    - c, j 는 'ㅊ', 'ㅈ' 비슷하게 읽습니다.

     

    연기빛은 흔히 '고등어 태비' 라 일컬어지는 그 색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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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들의 나라

    2xxx 년 x 월 x 일 어느 날 - 인간 세계는 전염병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전염병은 처음에는 감기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전염병 속에서 인류는 공포에 휩싸였고,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지표면에 있던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 하늘 위에 떠 있는 인공 구조물 위로 이주해 가거나 행성계를 떠나 타 행성계에 정착해 갔다. 그들의 옛 고향이었던 행성계에는 더 이상 인류가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인간이 사라진 어느 도시의 한 구역에는 수많은 길고양이들과 버려진 고양이들이 있었다. 인류가 사라진 후, 인류의 보금자리는 그들 중에서 영리한 고양이들과 그 일족이 차지했다. 오로지 인간과 인류 문명을 위해 존재하던 곳은 이제 고양이들의 소유가 되었다. 인류는 도시에서 찬란한 문명을 일으키고 수많은 소산들을 남겼지만, 고양이들에게는 그저 사냥터, 놀이터, 장난감에 불과했다. 인류의 문명을 고양이들은 지속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도시에서 인류 문명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다. 인류가 사라지고, 도시의 불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회색빛 건물들이 가득했던 공간은 서서히 초록빛 식물들로 뒤덮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도시에 생겨난 숲의 한 곳에 남겨진 작은 오두막에는 인류 문명이 존재하던 때처럼 불빛이 남아 있었다. 이에 이제는 사라졌을 존재가 아직 남아있음에 의아함을 느낀 고양이들 중 일부가 그 집 근처로 다가가서 집 근처를 유심히 바라보려 하였으니, 그 곳에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라 여기어진 어떤 존재가 남아 있었다. 하얀 옷차림을 한, 갈색의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 소녀였다.

    소녀가 어떻게 홀로 집에 남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고양이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소녀는 가끔씩 집 근처에서 하늘 위에 떠 있는 유리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홀로 살아가면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이 소녀를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소녀는 무척 어렸다. 소녀는 자신을 찾아와주는 고양이들을 보살피려 하였지만 그가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있던 고양이들은 한 번씩 그의 곁으로 찾아와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는 하였다.

    소녀는 성장하면서 자신을 찾아와주는 고양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해 주려 하였고, 자신이 아는 만큼, 소녀는 고양이들을 위한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려 하였다. 주변의 나무들을 베며, 고양이들의 놀이 기구들을 만들어 주고, 인근에 생겨난 연못에서 낚시를 해서 물고기로 고양이들의 먹이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은 소녀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둘씩 새로 생겨났고, 이러한 기구들, 그리고 소녀가 정성스레 만들어주는 음식과 물이 집으로 찾아오는 고양이들의 즐거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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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빛 신의 시대 (Novlficain Gomay Jelukh)

    그렇게 수많은 고양이들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이후, 소녀는 어른이 되었다. 여인은 어렸을 적부터 함께했던 고양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슬퍼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이 자신을 찾아오는 고양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여인은 마냥 성녀와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요리를 하다말고 좌절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분노에 찬 모습으로 고양이들을 두렵게 만들기도 했다. 한 번씩 시키는 목욕은 고양이들에 있어서 지독한 공포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갔던 그는 간혹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고양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비록 여러 이상한 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고양이들을 향한 애정은 진심이 가득했으며, 숲의 고양이들은 그것을 바로 느끼며, 그 애정에 감화되고 있었다. 도시에서 자연에서 험난한 삶을 이어가던 고양이들에게 있어서 여인의 집은 하나의 작은 쉼터, 놀이터와 같았고, 그 쉼터에 있는 동안만큼은 고양이들은 행복할 수 있었다. 고양이들은 은혜로운 공간을 제공해 주는 여인을 경외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를 '신' 으로 모시기 시작하였다.

    여인은 고양이의 수명보다 아득히 긴 세월을 고양이들과 함께 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여인이 고양이들의 신이 되고 80 여년이 지난 어느 날, 집을 나선 여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신' 이 '신의 궁전' 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러한 그들의 바람과 달리 '신' 은 여러 나날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신을 기다리던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늙어가고 세상을 떠난 이후, 고양이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신' 이 지상에서의 일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인 '무지개 나라' 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고양이들은 자신들을 은혜롭게 보살피고 따뜻한 쉼터를 마련해 주었던 '신' 을 너무나 그리워하였으며, 이는 후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전승을 낳았다. 모든 고양이들은 죽으면 그 영혼이 '무지개 나라' 에 있는 '신의 거처' 에 이르며, '신' 의 곁에서 영원히 '신' 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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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빛 왕들의 시대 (Giyin Imgïmdrï Jelukh)

    그 이후로 얼마나 세월이 지났는지 알 수 없다. 고양이들은 아무리 지혜를 짜내어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나날 이상의 숫자를 계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나날들이 고양이 세상을 거쳐 가는 동안 고양이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의 거처' 였던 '신전' 은 폐허가 되었으머, 인간 문명의 흔적은 수풀에 뒤덮혀 거의 사라져갔다. 하늘에 떠 있던 '커다란 유리 덩어리' 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인류 문명의 유산은 고양이들의 작은 기억들 속에 작은 유리 조각들처럼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신' 이 세상을 떠나고, '신의 시대' 가 끝난 이후, '고양이들의 시대 (Naviy Epokh)' 가 시작되면서 고양이들은 '신' 을 대신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다. '신' 이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의 후손으로 은회색 털과 검은 무늬를 가진 크나큰 풍채를 자랑하는 암코양이, 비록 몸은 비대했지만 강렬한 카리스마와 고결한 성품을 가진 세 아이의 엄마였던 고양이가 고양이들의 여왕이 되었다. 최초의 여왕 이후로는 그의 자식들이 하나씩 왕위를 계승해 갔으며, 그 이후로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니, 이를 두고 '은빛 왕들의 시대' 라 칭한다. 신의 시대와 같을 수는 없었지만, 은빛 왕들이 다스리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평화가 지속되면서 고양이들의 수는 점차 늘어났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고양이들의 고민은 커져가고 있었으니, 숲에서 들어오는 맹수들의 침입을 막을 필요가 생긴 것이었다. 맹수들의 침입을 막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 가 생겨났다. 군대의 일원이 된 고양이들은 고양이 마을의 울타리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침입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침입자들을 막을 수 있게 되면서 평화는 더욱 확고해졌다.

    은빛 왕들의 시대가 이어지는 동안 인간을 대신해 세상의 주역이 된 고양이들은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한 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만큼은 직립할 수 있는 개체들이 생겨났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앞발로 온갖 것들을 쥘 수 있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들 중 일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들 중 또 다른 일부는 신의 시대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에 신의 형상을 그리려 하였다. 나무에 그려진 하얀 고양이의 형상, 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고양이들에게 이러한 형상은 신성한 형상으로 널리 숭앙받았고, 신은 하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고양이들은 굳게 믿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신이 만들었다는 수많은 물건들이 성물로서 모셔지기 시작했으며, 신의 형상과 성물에 가호를 비는 이들, 무지개 나라로의 인도를 기도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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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빛 암흑 시대 (Fiyficain Admay Jelukh)

    은빛 왕들의 시대가 끝났다. 평화에 젖어 나태해진 고양이들을 숲의 맹수들이 습격했고, 수많은 고양이들이 그로 인해 죽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감히 싸운 은빛 왕과 그의 후손들 역시 모두 전멸했고, 왕가의 대가 끊기면서 왕의 시대가 끝나게 된 것이다. 맹수들은 사라졌지만, 시대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각지에서 왕을 자처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고양이들의 숲은 스스로 일어난 왕국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이러한 시국 속에서 고양이들은 보다 평화로운 삶, 그리고 안정된 삶을 원했고, 그들의 마음이 기댈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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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사제들의 시대 (=ayain Sakraidrï Jelukh)

    이러한 시대에 어느 하얀 고양이가 있었다. 신의 형상과도 같이 새하얀 고양이는 숲의 고양이들에게 '신의 화신' 으로 추대 받았고, 계속되는 싸움으로 피폐해진 고양이들에게 있어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각자의 나라에서 위세를 떨치던 왕들조차도 신의 화신이 오면 두려워하기 급급했을 정도였다.

    이후로 그 하얀 고양이의 후손들은 '신의 대리인' 으로 널리 경외되었으며, 그를 따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에 의해 무지개 나라를 향하는 고양이들의 신앙에 변화가 생겼다. 우선 모든 고양이들은 죽으면 무지개 나라로 간다는 믿음은 착한 고양이들만이 무지개 나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었고, 나쁜 고양이들은 재해의 공포로 도망친 '겁쟁이들' 과 '맹수들' 의 망령이 사는 곳으로 떠나가 고통받는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곳은 무지개 나라의 찬란함과는 대비될 필요가 있었고, 따라서 어둡고 검은 나라로 칭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신앙의 변화는 그간 발생한 전란 그리고 전란의 원인이 된 고양이들의 싸움, 사냥 본능의 통제를 위해 계속 강화되어 갔으며, 이러한 신앙의 규약은 '신의 이름' 아래에 거행되었으니, '신의 대리인' 의 수하들로 이러한 '사명' 을 이루는 이들을 고양이들은 '사제' 라 칭하게 되었다.

    사제들의 선별 기준은 엄격했다, '신의 대리인', 그 일족인 하얀 고양이들, 그렇지 않더라도 신앙이 깊은 하얀 고양이들이 사제로서 선별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제들은 하얀 고양이들이었고, 그래서 하얀 고양이들을 보면 모두 사제라 여기고는 했었으니, 이 시대를 '하얀 사제들의 시대' 라 칭해지게 된 것이다. 하얀 사제들의 권위는 왕 그 이상이었다. 왕도 '신의 백성' 인 이상, '신의 대리인' 과 그를 받드는 이들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어느 왕이 그 사제를 핍박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신의 대리인' 이 그에게 '신벌' 을 내리고, 백성들이 왕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신의 대리인' 에게 용서를 빈 적도 있었다.

    왕을 능가하는 권세를 누리는 사제들은 처음에는 신의 사명을 지킨다는 일념 하에 고결함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그 맹세가 퇴락하고, 그 권세가 무소불위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면서 사제들은 점차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무지개 나라의 신을 받드는 신앙은 그렇게 타락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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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의 시대 (=ayagamzï Jelukh)

    신앙이 부패하고, 고양이들이 사제들과 신에 대한 환멸을 느끼려 하고 있을 즈음, 한 무리의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어느 검은 고양이가 중심이 된 이들은 '신앙의 원점 회귀' 를 주장하며, 신앙을 가진 이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오직 선행과 믿음을 통해서만 무지개 나라로 나아가, 신의 곁에 이를 수 있다는 그들의 사상은 부패한 신앙에 질려버린 고양이들을 크게 감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움직임은 하얀 사제들을 크게 동요시키고 있었다. 자신의 권세를 크게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재앙'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권세는 오로지 평신도들의 복종이 기반이 되고 있었다. 그 복종이 사라지면, 그들의 권세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따라서 평신도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그들에게는 필요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검은 고양이를 중심으로 한 '개혁' 을 잔혹하게 탄압하고, '개혁' 에 찬동한 이들을 잔혹하게 죽여 본보기로 삼는 것, 그 이상은 없었다. 하얀 사제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선조 이래로 그러하였듯, 이러한 명령을 쉽게 따를 고양이들이 아니었다. 결국 하얀 사제들과 검은 고양이단을 중심으로 거대한 세력들이 공존하고 대립하는 상황으로 치달아갔다.

    그 와중에 하얀 사제들의 신전에서 대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나라와 나라 간의 격돌에 하얀 사제들이 관여하면서 그 여파로 하얀 사제들의 거점이었던 신전 일대가 싸움으로 인해 지도자를 잃고 분노한 사냥꾼 고양이들의 표적이 된 것이었다. 사냥꾼들은 신전 일대를 습격해 일대에 거주하는 고양이들을 마구 물어뜯어 죽여 버렸다. 사제들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수많은 사제들이 목숨을 잃었다. '신의 대리인' 은 신전에서 도망쳐 어느 풀숲 속에 숨어 간신히 연명했다. 사냥꾼들은 검은 고양이단의 신앙에 찬동하는 자들이었으며, 그들을 향한 사제들의 탄압과 잔혹사에 분노하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사제들을 죽이는 데에 거리낌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만행으로 인해 신전 일대는 폐허가 되어 버리고, 한 동안 아무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무지개 나라' 의 재현이 곧 '불타는 나라' 의 모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불타는 나라' 가 되어버린 곳을 '무지개 나라' 로 되돌리기 위해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고, 또 수많은 고양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두 세력의 대립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얀 사제 측과 검은 고양이 측의 대결은 팽팽하게 이루어졌지만, 하얀 사제들의 몰락이 거듭되면서 대등했던 기세는 금방 기울어졌다. 전쟁은 끝났다, 하얀 사제들은 검은 고양이들의 신앙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신앙이 공존해가는 시대를 '흑백의 시대' 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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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색 각성의 시대 (Kalikoin Kheday Jelukh)

    세월이 또 지나고, 고양이들은 계속 진화해 갔다. 인간처럼 걸을 수는 없었지만 인간처럼 설 수는 있었으며, 앉을 수도 있었다. 지능의 발달과 더불어 지혜도 쌓여갔고, 그들 역시 스스로 배우고 창조하는 일들을 해 나아가게 되었다. 어떤 젊은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영역 밖을 바라보며 그 일대를 탐험하기도 했고, 그 곳을 새로운 영역 (Shaeyeri) 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지능이 발달하면서 고양이들은 그들 나름의 학문을 깨치기 시작했다. 신앙, 사냥, 싸움, 그림, 그리고 고양이들의 언어와 숲 속 고양이들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 식민지 개척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고양이들은 유감스럽게도 집단 간의 결속력은 부족했다. 그들은 영역이 더욱 중요했고, 낯선 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낯선 이들 간의 결속이 중요한 행동을 잘 하지 못했던 것. 개척지에서의 그들의 생활은 하나의 작은 집단,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학문의 발달과 더불어 고양이들의 의식은 점차 높아져가고 있었다. 신을 받들며 살아갈 필요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역시 생겨났다. 그렇게 스스로 문답을 거듭해가며 고양이들의 의식은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신 그리고 무지개 나라만을 바라보며 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나라가 가지는 현실을 바라보며 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태도는 그들을 더욱 이성적, 현실적으로 변화시켜 갔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는 이들도 생겨났다. 당시의 고양이들은 죽으면 선행의 여부에 따라 무지개 나라, 검은 나라에 가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정말로 그러한 나라에 갔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으니, 이를 근거로 고양이들은 점차 신의 나라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 그들 중 일부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까지 갖게 되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한 번 즈음은 고양이들의 곁에 모습을 드러낼 터인데,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신은 죽었다, 혹은 신은 더 이상 고양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믿음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고양이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고양이들은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현실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갔다. 이러한 모습은 선조들의 모습과 크게 다름이 없었으니, 수많은 세월을 거쳐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와 같은 삶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다만, 선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신앙과 윤리라는 선행의 지표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겨난 지식 그리고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의 영역은 점차 넓어져갔지만, 그들은 다시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고양이 집단의 결속이 약화되면서 그 결속이 힘의 기반이 되었던 왕들 그리고 왕국들은 몰락해 갔다.

    그 와중에 하나의 희보가 있었으니, 하얀 사제들과 검은 사제들이 다시 하나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하얀 사제들은 하얀 고양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검은 사제들은 검은 고양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얀 고양이, 검은 고양이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각 사제단은 인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색을 띠는 고양이들을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두 집단 모두 자신들의 성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석이 되어 대립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신앙의 권위는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저 오래토록 대립했던 두 신앙의 통일에 그 의의가 있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얀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는 더 이상 사제의 상징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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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자 (Dlygidr)

    그렇게 또 여러 나날들이 지났다. 고양이들 중 누군가가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신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신의 모습을 실제로 재현하겠다는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신의 재현' 을 원하는 고양이들이 시대가 지나면서 늘어갔지만, 그들이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한 명확한 전승이나 기록 등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얀 고양이의 형상일 것이라는 전승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 누구도 명확히 대답을 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숲 속, 신전의 유적 인근에 있는 고양이 마을로 한 무리의 이상한 이들이 다가왔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억을 오래토록 잊고 있었던 고양이들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쳐 갔다. 더욱이 그들은 빛을 내고 있었으니, 더욱 수상하게 여기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의 장로 고양이가 이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빛의 무리가 나타난 곳에 이르러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너무나 놀라워하면서 그들을 두고 말했다, 그들은 전승으로 전해지고 있던 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고.

    숲 속으로 들어온 이들이 신과 닮았다는 이야기에 숲길에 이른 모든 고양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날개를 가진 무리는 고양이들에게 다가가서 자신들의 나라로 그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는 말과 함께 신전 앞에 빛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린 후에 고양이 마을을 떠났다.

    그들이 정말 신의 일족인지를 고양이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목도했던 장로 고양이는 그들이 신의 일족일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고, 고양이들은 무엇을 하든 장로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장로 고양이는 '빛의 원반' 이 고양이들을 신의 나라로 이끌 것이라 말하며, 신의 나라에 가는만큼, 예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함을 말했다. 그리하여 고양이들은 한 무리의 사절단을 마련하기로 하고, 우선 하얀 고양이들은 신의 화신으로 모셔졌다는 전승에 근거해 마을에 살고 있던 어린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대표로 삼은 후에 수행원 몇이 그를 따라 '신의 나라' 에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빛의 원반은 정말로 그들을 어딘가로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원반을 밟고 원반이 빛을 발하였을 때, 한 순간의 빛 이후로 그들은 마을이 아닌 어느 세상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른 곳은 전승에서 말하는 신의 나라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숲 속과 크게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다만, 빛들이 수시로 떠돌고, 형형색색을 이루는 나뭇잎들이 곳곳에 있었다는 것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숲과는 다르기는 했다. 그 숲에는 신과 닮았다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자리잡고 있었다. 숲에 이르러 그들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고양이들은 이전에 보았던 빛의 존재의 인도에 따라 그들의 왕 앞에 이르게 되었다.

    '요정의 여왕 (Ariyadrï Imgïmje)' 이라 칭해진다는 존재. 그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신' 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고양이들이 있었다고. 그리고서 그는 작은 약병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신의 기운' 이 담긴 그릇으로서 그 그릇에 혼이 깃들면 누구나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얀 고양이는 신을 창조할 수 있다는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병을 조심스럽게 들었고, 그러면서 요정의 여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 인사에 대한 답례를 하면서 요정의 여왕은 또 말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을 함부로 마시려 해서는 안 된다고.

    그리하여 하얀 고양이는 '신의 일족', 그 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물품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후, 하얀 고양이로부터 약병의 사용법을 들은 장로는 너무나 기뻐하면서 다음날 밤에 의식을 거행하자고 말하고서, 신의 재래에 기뻐하는 고양이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제 의식이 끝나면 '신' 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고양이들은 기대에 부푼 채로 모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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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 (Mec)

    그러나, 막상 하얀 고양이는 전혀 잠들지 않고 있었다. 약병을 들고 마을로 돌아가는 동안 그에게 하나의 큰 욕심이 생겨나 버린 것이었다, 그 모종의 욕심에 사로잡힌 그는 조심스럽게 장로의 집으로 숨어들어서는 그가 탁상 위에 올려놓은 약병을 몰래 훔쳐서는 자신의 집으로 달아났다. 이후, 하얀 고양이는 그 병을 들고 약을 그대로 마셔 버렸다. 요정의 여왕이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던 일을 그대로 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곧바로 신전 인근의 샘물, 고양이들이 즐겨찾던 그 샘물로 나아가서는 약병에 남은 약을 모조리 쏟아 버렸고, 하얀 액체가 섞인 물을 병에 채워서는 장로의 집으로 돌아가 다시 그 병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서 그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밤, 장로는 병을 가지고 의식을 집행하였으나, 어떠한 개체도 태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미 물에 희석되어 더 이상 순수하지 못한 정수로는 스스로 혼이 깃들게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마을의 고양이들은 모두 실망했고, 장로가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장로는 누군가의 그릇된 생각에 의해 액체의 일부가 사라지고 모자란 것을 물이 채워 그렇게 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으며, 그 범인을 찾아내려 하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이후, 마을의 고양이들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의 몸은 커지고, 몸에 가득했던 털이 없어졌으며, 길고 긴 팔과 다리를 갖게 된 것이었다. 체구가 커지면서 그들의 집이 감당하지 못하게 돼 그들의 집은 모두 부서졌다. 이러한 사태에 당황한 모두가 샘으로 달려나가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의 눈에 비추어진 것은 이전과는 너무 달라진 그들 자신의 모습이었다. 빛을 발하는 그들의 몸은 이전에 마을을 찾아온 빛의 무리와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요정의 여왕이 경고했던 바는 그것들이었다, 약을 마시는 순간, 요정의 기운에 의해 그들의 몸이 변화하고, 그로 인해 더 이상 그들은 고양이로 살 수 없게 되며, 더 나아가, 고양이 나라의 질서에 큰 파란을 일으키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약을 마심으로써 신의 형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신의 인격은 결코 가질 수 없다는 것. 이후, 모든 진실을 깨달은 고양이들은 더 이상 그들이 마을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그들의 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신전의 샘물을 마신 이들이 모두 신족이 되어 무지개 나라로 떠났다는 소문이 고양이들 사이에 퍼졌고, 수많은 고양이들이 신전의 샘물을 향해 나아가서 샘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고양이 나라에 있던 모든 고양이들이 신과 닮은 형상으로 변한 채로 고양이 나라를 떠나가니, 이것이 고양이 나라의 종말이었다. 흩어진 고양이 일족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어 인간, 요정의 집단처럼 생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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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요정 (Katsia)

    인간 소녀/여인과 닮은 모습이 되고 나서야 고양이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신으로 받들고 있던 이는 사실은 인간이었으며, 자신들을 찾아와주는 고양이들이 영원히 이어질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었다는 것.

    고양이 일족에게 더 이상 신은 유별난 존재가 아니었지만, 인간의 마음과 지혜를 깨달은 그들은 선조들과 함께 있으면서 보은으로서 수많은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던 옛 신에 대한 경의를 표했고, 그의 정성과 노력에 영원히 감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여, 선조들이 받들던 신처럼 은혜로운 이들이 되겠노라 맹세하였다. 잊혀졌던 신앙은 그리하여 부활하였다, 그것이 현재 '고양이 요정' 들로 칭해지는 고양이 여인들이 가지는 그들의 유일한 신앙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얻었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인간의 지성과 외모 뿐으로 그 근본이 고양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고양이 요정 (Katsia)' 이라 칭한다. 혹시 어딘가에서 이런 예쁘장한 여자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유난히 상자를 좋아하고, 나무에 올라타기를 좋아하는 소녀들이 있다면, 높은 곳에 올라앉아 잠드는 것이 낙인 소녀들이 있다면, 그들을 눈여겨 보아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들이 숨기고 있는 귀와 꼬리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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