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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정, 월영 야행 -2-Travel 2019. 8. 2. 19:49
월영교에는 하나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의 어떤 여인이 젊은 나이에 병사한 남편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과 함께 엮어가며 신발을 만들었다는 설화. 이 설화는 1998 년 안동 정상동의 택지 개발 지구에서 있던 무덤을 이장하는 도중에 무덤 속에서 편지와 신발이 발견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무덤의 주인은 고성 이씨 가문의 이응태이며, 편지는 부인이 쓴 것. 부인은 '원이 엄마' 로 알려져 있으며, 무덤이 발견된 자리에는 원이 엄마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에 알려지기도 한 바 있다.
월영교는 이렇게 근래에 이르러서야 알려진 지역 설화의 모태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월영교에서 바라본 풍경.
월영교 부근에는 여러 고건물들을 비롯한 문화 유적들을 구경해 볼 수 있다. 이들 대다수는 안동댐 건설의 여파로 수몰된 지역에서 옮겨진 것들이다.
정효비. 이 비는 고려 말기의 인물인 '권백종' 의 효행을 칭송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안동 권씨 15 세 손으로서, 한성 판윤을 지냈으며, 후대에 '의정부좌찬성' 에 추증되기도 했었다.
- 이 비에 대해서는 다소 씁쓸한 혹은 안타까운 뒷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아들 중에 권전이 있으며, 그는 조선 문종 '이향' 의 마지막 장인이기도 하다. 문종의 세자 시절, 왕실을 문란케 한 사건당시에는 그야말로 대형 사건이었다.
으로 폐위된 두 여인들을 대신해 이미 딸들을 낳았던 권전의 여식이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이후에 문종비, 현덕왕후가 되며, 그가 낳은 아들이 조선 제 6 대 왕인 단종이다.
단종의 폐위 이후, 권전의 부인인 최씨와 그 아들이자, 현덕왕후의 형제였던 권자식이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였으나, 복위 운동이 실패하면서 이들 모두 서력 1456 년에 성삼문 등과 함께 처형되었으며, 이후, 현덕왕후는 폐위되고, 일가 역시 멸문을 당하는 것으로써, 효행으로 유명해진 인물, 그 후손들의 역사는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 권백종의 효행에 대한 기록은 이 비에서만 찾을 수 있음에는 이러한 이유가 전해지고 있다고.
현덕왕후와 권전의 복권은 후대에 이루어졌으며, 권전에 대해서는 사후, 그의 영이 홍천, 강릉 일대의 산신령이 되어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날씨는 더웠지만, 그래도 화창한 하늘과 그 하늘을 비추는 호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하루. :)
그래도 정말 덥기는 더웠다.
그래서 잠시 더위를 피해 들어온 어느 커피숍 내부의 모습.
저녁 무렵이 되자, 먹구름이 몰려 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와중에 비라니! 이런 일은 이전에도 몇 번 겪은 바 있기는 하나, 겪을 때마다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도 그 덕분인지, 하늘 위로 선명한 색을 띠는 무지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의 구름에 있는 틈 사이로 햇빛이 내리고, 그 햇빛과 구름이 무지개를 만드는 동안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는 뭔가 기묘한 순간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조명들이 하나둘씩 빛을 내기 시작한다. 야행 행사 시간은 오후 7 시부터 10 시까지. 날이 늦게까지 밝았던 관계로 7 시 넘어서야 조명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의 조명. 일정 시간을 주기로 색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녁을 맞이하는 월영정 일대의 모습. 이 무렵, 월영정 부근의 호수 위로 물안개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바로 앞의 월영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게 일어나기도.
처음에는 모종의 장치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었으나, 이후에 이 안개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