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화엄사 기행
    Travel 2019. 11. 3. 23:59



    구례 화엄사.

      화엄사는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찰로서, 사찰명의 유래는 '화엄경(Avatamsaka Sutra - 아와땅샤까 슈뜨라)' 이라는 경전의 이름이다. 온갖 큰 수 단위가 나온 화엄경에서 유래된 사찰답게 지리산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는 사찰이며, 원래는 수많은 암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근현대사의 시련 속에서 살아남은 암자들은 구층암, 금정암, 지장암의 3 곳 뿐이다.
      신라 진흥왕 5 년 (544 년) 무렵에 승려 '연기' 에 의해 건립된 사찰로서, 의상 대사가 화엄경을 선양하여 화엄 10 대 사찰의 하나가 된 곳이다. 삼국 시대 이후로 남북국 시대,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증축이 이어져 왔다. 임진왜란 때의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후에 벽암선사가 인조 대에 재건을 개시하였으며, 중건 작업은 조선 숙종 대에 마무리된다.
    - 연기는 인도에서 왔다고 하며, 연기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며, 그가 정말 인도에서 왔다면 (아마도) 연기는 그의 본명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연기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는 'Pratityasamutpada (쁘라띠땨사뭇빠다)' 이다.

     

      입구 너머로 보이는 삼불상.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며, 말하지 않는다' 를 표현하는 상이라 결코 우습게 봐서는 안 되지만, 불상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워 '안 보여, 안 들려, 난 몰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인근에는 성보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석탑에서 출토된 유물 무리와 화엄경을 새긴 석판 등이 전시되고 있다.

     

      화엄사에는 천왕문 이외에도 금강문이 자리잡고 있으며, 금강문에는 좌우마다 하나씩 금강역사들(Vajrapani - 와즈라빠니)과 동자들의 상이 자리잡고 있다. 금강문에 자리잡은 역사는 밀적금강(Guhyaka - 구흐야까) 과 나라한금강(Narayana - 나라야나) 이며, 각 역사들 옆에 자리잡은 동자들은 각각 '보현보살(Samantabhadra - 사만따바드라)' 와 '문수보살(Manjusuri - 만주슈리)' 의 화신으로서 보현보살의 화신은 코끼리를, 문수보살의 화신은 사자를 타고 있다.

     

      화엄사의 대웅전 부근에 위치한 운고각. 북이 자리잡고 있다. 반대편에는 종이 자리잡은 범종각이 있다.

     

      화엄사에는 단청 색칠이 없는 건축물이 몇 있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그 중 하나인 '보제루' 로서, 화엄사에서 승려 및 신도들이 사용하는 강당 건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단,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 바닥이 먼지로 가득하다, 안에 들어가려면 양말 착용은 필수.
    - 보제(Bodhati, Budhyate - 보다띠, 부댜떼) 는 '참다운 지혜', '깨닮음', '앎의 경지' 를 일컫는 말이다.

     

      대웅전 부근에는 한 쌍의 석탑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동/서 5 층 석탑이라 칭하며, 각 탑은 대웅전 그리고 사찰을 대표하는 법당인 '각황전' 근처에 있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대웅전으로 사찰을 대표하는 법당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웅'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어 있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법당인 '각황전'. 단청 채색이 없는 2 층 건물로서, 본래는 '장육전' 이 자리잡고 있었다. '장육' 은 '장육금신' 이라 칭해지는 석가 여래의 대형 불상을 모시는 곳이라하여 이러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육전이 임진왜란 당시에 전소되어 당시의 형상과 불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벽암선사가 인조 대에 화엄사를 복원했어도 장육전만큼은 복원하지 못하다가 숙종 대에 계파대사가 장육전을 중건하면서 '각황전' 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각황전에 관한 일화 :
      건물의 재건을 위해 공양주였던 계파는 중건 책임자(화주승)가 되었다. 매일 같이 고민에 잠겨있던 승려는 꿈 속에서 문수보살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 라 하였고, 이후, 그는 다음 날,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던 노파를 발견하게 되었다. 계파는 노파에게 지난 꿈 이야기를 하면서 시주를 부탁하였고, 이에 노파는 죽어 다시 태어나도 불사를 하겠노라고 말하면서 웅덩이에 뛰어들어 숨을 거둔다.
      이후, 숙종 대에 장육전이 각황전으로서 재건된 것에는 숙종의 딸이 큰 역할을 하였고, 숙종의 딸이 사실은 노파의 환생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기도 하다.

     

      대웅전 부근에 있는 5 층 석탑의 탑신 중 하나의 벽면에는 동자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만, 머리 부분에 균열이 나 있어서 오래 전에 놓인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4 사자 석탑. 탑신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탑신이 온전한 4 사자 석탑도 있기는 하나, 2019 년 10 월말 기점으로 보수 공사중이었던 관계로 해당 석탑이 놓인 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마치 형제와도 같은 석탑들의 모습. 자세히 보면 석탑들의 외형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웅전과 각황전의 지붕의 정문쪽 추녀 끝에 하나씩 목어들이 자리잡고 있다(목어라 하였지만, 금속 재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금어) 목어는 통상시에는 아침, 저녁 예배를 알리는 용도로, 위급한 상황 시에는 물고기처럼 언제나 깨어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웅전과 각황전에 자리잡은 목어들이 서로 다른 때에 소리를 내다보니, 이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울림을 만들고는 하였다. 맑은 하늘과 산 그리고 그 산하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들리는 종소리에는 나름 느낌이 있다. :)

    - - -

      화엄사 입구로 돌아온 이후, 버스를 기다리다가 하동행 버스가 오자 해당 버스를 타고 하동 읍내로 갔으며, 남은 시간 활용 및 숙박은 하동 읍내에서 했다. 본래는 하동에 잠깐 머무르다가 떠날 예정이었다.

    - 화엄사 입구 부근의 지리산 상가에는 4 마리의 개들이 살고 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 Edited by Lysie Singclair